헨델은 건반악기를 매우 잘 다뤘다. 그래서 그는 건반 악기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헨델은 왕실을 위한 음악도 만들었다. 헨델의 별명은 '음악의 어머니'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와 헨델의 관계를 알아보자.
1. 헨델의 건반 음악
헨델은 건반 악기 연주 실력이 매우 훌륭했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달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건반 악기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1720년에 헨델이 작곡한 '건반 악기를 위한 모음곡'은 여전히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모음곡 5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총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4악장은 '흥겨운 대장간'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4악장이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라 흥겹고 리듬감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헨델은 대장장이의 신난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4악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을 들어보면 음이 반복하는 부분에서 대장장이가 망치질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4악장은 헨델이 죽고 난 뒤 19세기 중반부터 '흥겨운 대장간'으로 불렸다.
헨델은 총 12곡의 '오르간 협주곡집'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를 공연할 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공연 중 휴식시간에 쓰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휴식용 곡으로 쓰기에는 너무 멋진 곡이다. 평론가들은 '오르간 협주곡집'의 완성도와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이 작품의 5번은 4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1악장은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2악장에선 오르간 독주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인 4악장은 웅장한 분위기를 만든다.
'콘체르토 그로소'는 12곡의 협주곡이다. 이 협주곡은 현악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를 보여준다. '콘체르토 그로소'에서 4번의 마지막 악장은 날카로운 선율을 보여준다. 그래서 가슴이 두 군 거리는 불길한 느낌이 들게 해 준다.
2. 헨델과 왕실 음악
헨델은 왕실의 다양한 행사를 위한 음악도 만들었다. 헨델이 작곡한 다양한 왕실 의전 음악은 웅장하고 우아하다.
1717년에 조지 1세는 대규모 뱃놀이 행차 계획을 세웠다. 뱃놀이 행사를 통해서 그는 국민들에게 왕실의 존재감을 알리려고 했다. 이때 헨델은 '수상 음악(Water Music)'을 조지 1세에게 바쳤다. 다행히 조지 1세는 헨델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뱃놀이 행사 내내 '수상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를 계기로 헨델은 왕실 전속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수상 음악'은 3개의 조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조곡은 10개의 짧은 악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음악은 처음에는 웅장하게 시작한다. 그래서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차분한 분위기의 서곡이 이어진다. 그 뒤로는 춤곡, 행진곡 등 다양한 형식의 곡들이 계속된다. 마지막에는 흥겨운 분위기로 끝난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수상 음악'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왕실 행사용 관현악이다. 이 작품은 불꽃놀이의 배경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불꽃놀이는 1749년 런던 그린파크에서 진행되었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1개의 조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매우 짧은 곡이다. 그러나 매우 웅장하고 힘찬 곡이다. 이곡을 쓸 당시 헨델은 64세였다. 헨델은 1751년에 백내장에 걸렸다.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이 매우 안 좋아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반대편 눈까지 나빠졌다. 결국 그는 실명하게 된다. 두 눈을 잃은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그러다 1759년 74세라는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3. 바흐와 헨델
바흐와 헨델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예술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둘 다 독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바흐와 헨델의 고향은 그리 멀지 않다. 게다가 둘은 1685년에 태어났다. 바흐와 헨델 모두 키와 덩치가 컸다. 두 사람의 성격은 온화하지 않았다. 또 둘 다 건반 악기를 훌륭하게 다뤘다.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하다.
헨델과 바흐는 차이점도 있다. 제일 먼저 큰 차이점은 결혼이다. 바흐는 2명의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자식은 20명이나 있었다. 그래서 바흐는 적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 꾸준히 일했다. 그러나 헨델은 독신주의자로 살다 죽었다. 그래서 헨델은 돈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음악을 했다. 바흐는 북부 독일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헨델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여러 나라를 다녔다. 바흐는 교회 음악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헨델의 음악은 한 장르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오페라, 궁정 음악 등 다양한 곳에서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1719년 바흐는 헨델을 만나러 할레에 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헨델은 바흐가 찾아오기 바로 전날 영국으로 가버렸다. 헨델은 1737년 다시 할레에 왔다. 그 소식을 듣고 바흐는 그의 첫째 아들을 통해 헨델을 라이프치히로 초대했다. 그러나 헨델은 그 초대를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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